[리뷰] 우두커니

주인공 승아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자란 딸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아버지와 한집에서 동고동락했다. 영우와 결혼을 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인생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아버지'였고, 두 사람은 한 나무에서 난 가지와 이파리처럼 서로가 익숙한 사이였다. <우두커니>는 그런 부녀 사이로 망각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 이후의 이야기이다.


누구나 나이 들기 마련이다. 이 담백한 사실엔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변화까지 담겨 있지 않다. 아버지의 뇌가 예전처럼 동작하지 않으면서 치매가 찾아왔다. 치매는 평생을 알아 왔던 사람을 잊게 했고, 기존의 성정을 바꿔버렸고, 이유 없는 의심을 증폭시켰다.  승아와 영우는 치매 검진을 위해 촬영한 아버지의 뇌 사진을 가만히 바라본다. 활동을 멈춘 부분은 푸른색으로 나타난다는데, 사진이 온통 푸르다. 아버지의 머릿속이 망각에 잠식당할수록 세 사람의 하루하루도 점점 깊은 바다 같은 우울감에 잠긴다.



'망각한다'는 것은 곧 익숙했던 모든 것에 이별을 고하고 홀로 남는 과정이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예전의 자신과 점차 멀어져간다. 승아는 이따금 아버지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는데, 문득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는 아버지를 낯설게 느낀다. 평생을 사이좋은 부모 자식 간으로 지내왔던 두 사람을 그린 장면이지만 어쩐지 두 사람 모두 외로워 보인다. 메울 수 없는 거리감이 갈대가 바람에 스치우는 소리로 채워진다. 애잔하고 애틋하고 괴롭다. 


<우두커니>는 늙은 아버지와 살아가는 지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민하고 연약해진 아버지는 승아와 영우에게 아기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주 오랜만에 눈꽃 같은 함박웃음을 짓는다. 또 어떤 날엔가는 모질게 폭언을 내뱉는 아버지가 있다. 승아는 어릴 적 비가 오면 언제나 우산을 들고 마중 나왔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두 사람이 함께했던 수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켜켜이 축적된 복잡한 감정이 책 페이지마다 묻어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이 이 책에 담겨 있는 듯하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가다 보면, 예정된 끝이 어떤 모습일지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문득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도 언젠가 찾아올 그 묵직한 빈자리를. <우두커니>는 승아, 영우, 아버지 세 사람이 이별을 맞이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를 먼 미래로 보냈다가 다시 지금으로 돌려놓는다. 그럼으로써 언젠가 슬픔으로 인해 눈물이 멈추지 않는 순간이 오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사랑하고 기록해두라고 말을 건넨다. 지금 누군가를 당연하게 사랑하고 함께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Text.앙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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