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틱] 목인 <백일우>

오컬트 미스터리 만화 『백일우』가 ‘주변화된 것들’을 불러오는 방법

<백일우> 목인, 목인지


‘기우’를 섣불리 지나칠 수 없는 이유

기다렸던 경찰이 허무하게 당해버린다거나 의사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는 신체의 기이한 변화 같은 것들. 오컬트가 가미된 미스터리를 읽을 때 서사적 긴장감이 가장 극대화되는 순간 중 하나는 세계를 지탱한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력해지는 순간일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더는 기댈 곳 하나 없어진 주인공을 보며 두려움은 독자에게까지 전이된다. 법과 제도로 정비되고 이성과 상식으로 작동하던 근대화된 세계에 대한 강력한 믿음은 허물어지고 은근히 경시해오던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낡은 것, 기괴한 것, 낙후된 것, 개조되거나 폐기되어야 하는 것, 과학적이지 못한 것, 상식의 밖의 것들이라 믿어왔던 것들. 어리석은 미신에 불과하다 치부해오던 것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백일우』는 오랜 금기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다. 그 금기란 다름 아닌 ‘비를 맞지 말라’는 것. 지방의 시골 마을인 ‘소담리’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비를 맞은 이들이 실종되는 일이 반복됐다. 하지만 너무 오래 거듭된 탓인지 실종 사건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음에도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경찰마저도 손을 놓아버렸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토착 신앙에 대한 믿음마저 옅어지면서 현재는 대다수의 내지인들조차 금기를 미신이라 여기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고착된 상태다.



소담리를 수호해오던 무속인 ‘자애 선녀’의 손자 ‘기우’만이 이러한 마을 상황에 유독 예민하다. 그것은 그가 할머니의 신기를 물려받아 비 맞은 이들 아래에 고인 죽음을 볼 수 있기 때문도 있지만, 곁에 있던 사람들이 자꾸만 사라져가는 일에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탓이다. 하지만 금기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제발 비를 맞지 말라는 기우의 애원을 단지 ‘기우(杞憂: 쓸데없는 걱정을 함)’로 여길 뿐이다. 그렇게 가족, 친구, 이웃들이 사라져가는 가운데 기우는 타인의 죽음을 외면하지도, 해결하지도 못한 채 무력한 고립감에 빠져 있다.


소담리 주민 중에서 하필 기우가 주인공으로 설정된 것은 꽤 상징적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주변화된 것들’을 정체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소담리는 “대도시처럼 주목받기에는 충분히 세련되지 않고, 20세기 시골처럼 추억이 되기에는 너무 발달”해 세간의 관심 밖에 밀려나 있는 시골 도시다. 근대화와 함께 주변화된 지방을 배경으로 하는 속에서, 그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토착 신앙 역시 더는 예전처럼은 인정받지 못하는 중이다. 만화에 직접적으로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금기가 미신으로 치부되는 현재의 마을에서 자애 선녀의 존재감이란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기에 기우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금기의 무게를 알고 있음에도 특별히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거기에 청소년, 즉 미성년의 상태인 기우를 단지 어린 존재로 여기는 시선은 금기를 전하는 간절한 말의 무게를 감하고 무력감을 배가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경찰까지도 해결을 포기해버린 상황이 보여주듯이, 지속되는 이상 현상을 해결할 열쇠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져 온, 기우로 상징되는 주변적 존재들에 있다. 


그러한 전복성을 보여주는 것이 이상 현상이 발현되는 매개체인 ‘비’다. 비는 결코 피할 수 없이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인 동시에 익숙해서 전부 알고 있다고 치부해버리기 쉬운 대상이기 때문이다. 소담리 밖 도시인에게뿐만 아니라 토착 신앙과는 거리가 먼 시대에 자란 내지인들에게조차 빗물은 지극히 일상적인 존재이며, 이를 피하라는 금기는 노파심에서 비롯된 비합리적인 미신일 뿐이다. 하지만 금기를 어긴 이들이 감쪽같이 사라짐에 따라, 알고 있던 상식들은 전부 전복될 수밖에 없다. 당연하고 익숙한 것으로 여기던 물이 위험한 존재로 뒤바뀌는 것처럼, 신뢰할 필요 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것들을 주의 깊게 살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이 ‘기우(奇遇: 기이한 인연으로 만남)’하는 방식

해결되지 않은 채 가라앉아 가던 마을의 비밀을 수면 위로 떠 오르게 하는 결정적 계기는 아끼던 후배 ‘나리’를 찾기 위해 형사 ‘다연’이 소담리에 찾아오면서다. 항상 밝은 모습에 허물없이 가깝게 지내던 나리가 어느 날 우산 하나만을 선물로 남긴 채 사라지자 이를 납득할 수 없던 다연이 나리의 고향까지 찾아온 것이다. 오로지 나리를 찾는 것에만 관심 있던 다연은 살기 위해 마을을 떠나라는 기우의 경고를 가볍게 넘기지만 연이어 발생하는 기현상들을 통해 나리가 사라진 일의 배후에 훨씬 큰 무엇이 있음을 알게 되고, 조금씩 실종 사건에 다가서게 된다. 금기를 무시하거나 순응하는 방식으로 멈춰 있던 마을의 서사는 외부인인 다연의 낯선 시선을 통해 다시금 이상한 것,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로 조명된다. 그리고 토착민이면서도 마을의 이상 현상에 익숙해지지 못했던 기우와의 거듭된 만남을 거쳐 이야기는 다음 국면으로 접어든다.


여타 오컬트 미스터리가 그려내는 방식과는 다소 다른 기우와 다연의 관계성은 주목할 만하다. 지역의 토착민이자 무속인의 피가 흐르고, 미성년자이자 남성인 기우는 타지에서 온 형사이자, 꽤 연륜 있는 성인 여성인 다연과 거의 완벽한 대립 쌍을 이루는 듯하다. 그런데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성질을 지녔음에도 결코 적대적이지 않다. 무속으로만 설명 가능한 비밀을 가진 시골 마을, 그리고 그와 완전히 대치되는 논리를 가진 외지인의 사이만큼 한쪽이 타자화되기 쉬운 관계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이 만화에서 소담리는 어딘가 꿍꿍이가 있거나 이상한 믿음에 빠져 있는 불가해한 위험 집단으로 그려지지 않고, 다연 역시 토착민의 충고를 죄다 무시한 채 마을에 분란을 일으키는 무법자로만 그려지지는 않는다. 이는 이 만화가 기우와 다연의 시선을 교차해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일 텐데, 이를 통해 타자를 향한 무례한 재현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리를 획득한 셈이다. 


사라진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으며, 그 배후에 존재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기우는 사라졌던 사람들 모두를, 다연은 나리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연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고 말하는 정체 모를 남자가 외지인인 그녀와 어떤 관계일 수 있는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적극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은 자애 선녀는 사실 어떤 인물인지. 현재로선 1권밖에 나오지 않았기에 아직은 해답보단 질문이 더 많은 상태다. 


하지만 서사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들만큼이나 궁금한 것은, 그 해답에 도달해나가는 과정이 어떻게 그려질까 하는 것이다. 상식이 전복된 소담리에서 다연의 존재는 과연 어떤 변수로 작용할까. 기우가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휘말린 채로 1권이 마무리된 와중에 서로는 서로를 도울 수 있을까.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상반되는 색깔만큼이나 대비되는 성질을 지닌 두 사람이지만, 앞으로 그려나갈 서사는 대립하기보다 청홍의 날실과 씨실처럼 정교히 엮어진 형태가 아닐지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토착 신앙이라는 소재에 걸맞게 채도가 낮으면서도 다채로운 색감이나 간간이 삽입된 농담, 이야기 전반을 가로지르는 은근한 활기를 제외하고도 두 사람의 독특한 위치 설정이 이 만화가 어떤 식으로든 문제의 해결을 보여줄 것임을 기대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기존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 결국 다음 권을 직접 보지 않고서는 이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을 재간이 없을 것이다.


Text 최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