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일리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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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기는 쉬운데 권리를 지키기는 어려운 세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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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 대학에서 처음 들었던 말이었다. 통번역을 전공한 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말을 교과서 너머에서는 듣지 않아도 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젠트리피케이션은 뉴스에 수도 없이 오르내리며 정확한 뜻은 몰라도, 모두에게 이미지는 남아있는 말이 됐다. 건물주가 임차인을 쫓아내 자신들이 일군 삶의 터전에서 점점 쫓겨나는 현상은,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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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작가가 텀블벅을 통해 펀딩한 <일리없는세상>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어떻게 사람들을 삶의 터전에서 몰아내는지를 그린 단편이다. 공기 작가는 맘상모(맘편이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느꼈을 부조리의 아주 일부분을 보여준다. 주인공 하일리씨는 1층에서는 꽃집을 운영하고 2층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세입자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는 새에 건물주가 바뀌고, 그 건물주는 CCTV를 설치해 거주자를 감시하는가 하면, 연락을 받지 않고 아예 계좌번호도 알려주지 않아 3개월동안 월세를 받지 않고서 ‘3개월간 월세를 내지 않았다’며 퇴거명령을 받아낸다. 그리고 꽃집을 운영하던 주인공은 ‘사랑하는 공간’을 지키고 싶어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CCTV를 뜯어내며 만화는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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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이 만화는 극히 일부분만을, 절제된 감각으로 드러낸 만화다. 맘상모가 지난 수년 간 함께하고 있는 ‘궁중족발’ 사건의 경우 건물을 매입한 건물주가 보증금과 월세를 4배 가까이 올리고, 올리기 전 월세를 납입하기 위해 계좌번호를 물었으나 응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나자 월세를 내지 않았다며 퇴거하기를 요구했고, 여기에 불응하자 용역을 동원하는 등 2년간 지루한 싸움이 이어졌다. 싸움이 2년째에 접어들던 2018년 6월, 화가 폭발한 궁중족발의 사장 김우식씨는 망치를 들고 건물주를 쫓아가 상해를 입혀 최근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저 장사를 하고 있었을 뿐인 김우식씨의 삶을 망친 건물주는 오히려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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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쫓겨나는 건 쉽고, 권리를 지키는 건 어려운 이상한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치에 맞지 않는, 일리(一利)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모든 것이 부동산으로 귀결되는 한국 사회에서, 결국 살아남기 위해 월세를 지불하면서도 어떤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일리 없음’에 의문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이 만화로 의문에 불씨를 당겨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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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이재민

Cover. 공기

Image. Sid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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