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론] 후쿠시 치히로


폐허의 세계에서 빙글빙글빙글

후쿠시 치히로 작품론


작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20년 전에 개발된 온라인 RPG 게임 <일랜시아>를 배경으로 한다. 회사도, 운영진도 떠난 채 그저 연명하고만 있는 <일랜시아> 속 유저들은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세계에서 시간을 보낸다. 사람들은 매크로를 돌리고, 버그는 난무하며, 더 이상의 스토리는 없다. 그러나 모든 임무도 목표도 없는 이 세계에 사용자들은 기꺼이 시간을 내어 접속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일본의 만화가 후쿠시 치히로의 작품 연작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후쿠시 치히로는 동인행사나 개인홈페이지에 주로 작품을 발표해 온 일본의 독립만화가다. 눈 밝은 현대 예술가 두 명이 후쿠시 치히로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시작한 출판사 살라미에서 그의 작품을 번역·출간했다. 출판사 살라미는 책 출간 이전에 후쿠시 치히로의 개인전을 국내에서 열기도 했다.


후쿠시 치히로의 작품은 굉장히 독특하다. 일반적인 만화를 생각하며 그의 책을 열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만화를 칸과 칸의 연속으로 이뤄진 예술이라 할 때, 이 작품은 분명히 만화다. 칸과 칸이 이어지고, 말풍선이 있으며, 캐릭터들은 시각적 이미지와 텍스트의 조화를 통해 의미를 전달한다. 그렇지만 이 작품엔 특정한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으며, 칸과 칸이 이어지지만 페이지와 페이지는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로지 대사의 '주고받음'이 있을 뿐, 이 모두를 얽는 단일한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뿐이랴, 캐릭터들의 생김새도 매우 독특하다. 동물 인간이 등장하거나, 판타지 세계에 나올 법한 전투복과 액세서리를 걸치고 있거나, 마법 등의 스킬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 만화는 판타지 세계를 상정하지만, 캐릭터들은 의도적으로 일그러진 듯한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심지어 어떤 캐릭터는 머리만 둥둥 떠다니기도 한다. 이들은 소통되지 않는 대사들을 주고받고, 알 수 없는 일들을 하고, 느닷없이 누군가를 때리거나 마법으로 형상을 바꿔놓기도 한다. 유의미한 행동을 하는 캐릭터들은 거의 없다. 지도도 읽을 줄 모르는 데다 방향치인 이들은 계속 같은 곳에 도착하고(<잠든 요구르트> 47쪽), 의미 없이 다른 캐릭터를 조각상으로 만들며(<푸드코트에 안부를> 29쪽), 복잡하게 엉킨 끈을 스파게티 젤리로 만들어 먹는다(<엔에이치케이> 26쪽).



모두가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는 이 작품을, 살라미 출판사의 강정석 대표는 "다 끝난 게임 속에 살고 있는 듯한"(팟캐스트 〈성인수의 만화클래식〉, 115편, 28분) 기분에 빗댄다. 아닌 게 아니라, 후쿠시 치히로 만화의 세계관은 운영진도 없고 목표도 없는 다 끝난 RPG 세계와 유사하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폐허, 그러나 여전히 모험과 마법의 세계인 이곳에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남아 끊임없이 허기를 채우려 한다(그렇지만 이 욕망은 계속 실패한다).

훨씬 더 멋진 탐험의 세계가 바깥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왜 계속 <일랜시아>에 접속하고, 후쿠시 치히로의 캐릭터들은 폐허가 되어 버린 모험의 세계 속에 남아있는 것일까? "사실 내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게임이 이거밖에 없어."(<내언니전지현과 나> 다큐멘터리 중) 와 같은 자조적인 이유 역시 중요한 동기겠지만, 이는 어쩌면 유년기에 대한 향수일지도 모른다.


"어릴 땐(90년대 후반) 플레이스테이션1과 게임보이를 하며 자랐어요. 게임 속 세계는 작거나 큰 모형 정원이고 그 안에서 롤플레잉을 하잖아요. 그런 경험이나, (뒤에 아무것도 없을) 바다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것과 같이, 세계의  변두리를 연상시키는 게임이 좋아요. 캐릭터와 물건(object)의 디테일에 매료되기도 하고, 조촐하게 물건을 모으고 육성하는 등, 게임의 수수한 점을 좋아해요. 지금은 «여길 파라! 푸카(ここ掘れ!プッカ)»라는 플레이스테이션1 시절 게임을 다시 하고 있는데요, ‘푸카’라는 쥐 캐릭터를 통해서 우주의 여러 행성으로 흩어진 우주석이라는 광석을 채굴하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게임 중 하나에요." (작가와의 인터뷰 중, 출판사 살라미 제공)


도시의 삶을 살고 있는 '나'가 다시 과거의 게임에 접속해 유년기의 '나'를 그리워하며 게임 세계에 접속할 때, 게임을 플레잉하고 있는 '나'는 어떤 자아인가. 후쿠시 치히로의 세계관에는 이 자아들이 혼합되어 있다. 이는 완결난 게임의 캐릭터와 유년기의 '나', 그리고 청년의 '나'가 모두 opacity를 조정한 채 레이어처럼 겹쳐진 듯한 모습이다. 이 자아는 이미 끝나버린 과거의 세계 속을 탐험한다. 아무런 목표도, 지향도 없이.


"이 이야기는 그만둘래?" - 실은 이미 예전에 끝났던 일이다. (<엔에이치케이> 53쪽)

"뭐가 뭐고 뭣이라는 옛날 옛적 이야기입니다." (<푸드코트에 안부를> 93쪽)


후쿠시 치히로는 이야기를 다시 빙글빙글 되감으며 현실과 게임, 과거와 현재를 뒤섞어 놓는다. 그의 작품을 '시집'처럼 감상해달라는 출판사의 코멘트마따나 이 작품을 읽을 땐,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자세로 편안하게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혹자는 이런 감상 방식 때문에 작가에게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고' 묻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놀랍게도, 이에 대한 작가의 대답 역시 이미 준비되어 있다.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모르겠어. 모르는 것투성이야.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모르는 게 당연하지. 우린 바보잖아" (<잠든 요구르트> 46쪽)

Text 조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