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If,Say <사회초년생 콩알 탈출 게임북>


게임 오버는 없어요,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If, Say <사회초년생 콩알 탈출 게임북>


만화는 선형으로 이루어진 서사를 칸과 칸의 연결을 통해 선보이는 예술이다. 각 칸과 칸의 연결을 유기적으로 활용하면서 ‘작가가 의도한’ 바 대로 읽을 수 있도록 말풍선, 인물, 칸과 칸 테두리, 배경을 배치한다. 그림의 밀도를 조절하기도 하고, 칸 테두리의 기울기나 칸의 크기를 변경 하기도 한다. 사실 이건 현대의 만화를 보는 사람들에겐 굳이 배울 필요가 없는 상식의 영역에 속한다. 웹툰의 시대에 와선 기존의 출판만화에서 페이지가 가지는 공간의 활용보다 세로로 길게 배치되어 ‘선형’ 구조가 더 굳어지게 됐다.


그러나 가끔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정해진 대로 읽는 만화만 있어야 할까? If, Say 작가의 <사회초년생 콩알 탈출 게임북>은 이 질문을 작품으로 풀어낸 책이다. 90년대와 2000년대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게임북’의 형태를 빌려와 만화로 접목시킨 이 작품은 흑백으로 이루어진 칸 사이에 분홍색 컬러 인쇄가 된 ‘표식’을 따라서 ‘게임’을 하도록 유도한다. 독자가 단순히 작가가 전달하는 작품의 요소를 감상하는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페이지를 찾고 따라가도록 유도한다는 점이 이 작품을 일반 만화가 아니라 ‘게임북’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소다.



이렇게 게임북 형식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일반적 만화 독서 방법으로 이 작품을 읽는다면, 결코 서사를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디지털 방식이 아닌 출판만화 형식으로 엮어냈기 때문에 물흐르듯 끊임없는 독서경험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안내되는 페이지에 가서 다른 컷을 보지 않아야 방해 없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이런 불편함을 감내하기로 선택한 독자에게, 이 작품은 여러개의 엔딩을 보여주며 이채로운, 또는 어떤 독자들에게는 추억 속에만 존재하던 경험을 다시 제공한다.


이걸 위해 흔히 만화가 가지는 시각적 요소를 단순화해, 독자들이 칸과 칸이 아닌 페이지와 페이지를 넘나들며 느끼는 혼란을 최소화 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그림은 단순한 선화로 데포르메를 많이 넣었고, 등장인물 역시 최소화했다. 선택지에 따라 나뉘는 서사와 그에 따른 여러가지의 엔딩 구조를 독자들이 편안하게 따라올 수 있도록 배려한 결과다. 다만, 페이지와 페이지의 연결을 모두 경험해보려면 반복적인 독서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게임북이 가지는 한계를 만나기도 한다.


게임북의 형태로 만화의 독서경험을 살리기 위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지만, 사실 이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서사다. 십여년 전 게임북에서는 ‘게임오버’를 만나게 되는 선택지가 있고, 게임오버가 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흔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작가는 “현실에서는 이미 한 선택을 되돌리기 어렵지만 게임북에서는 가능하답니다”라며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게임 오버는 없답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인생을 만화처럼 생각하곤 한다. 선형으로 정해진 단계에 따라, 그때의 선택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때론 그 결과에 따라 ‘게임 오버’ 선고를 받는다고 여기기도 한다. 최근 뜨거운 ‘공정 논쟁’은 이를 반증하는 우리의 그림자기도 하다. <사회초년생 콩알탈출 게임북>은 콩알이가 되어버린 사회초년생의 어떤 선택도 존중받을 수 있는 선택지라는 걸 말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복잡하게 설계 된 페이지를 넘나들며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현실의 복잡했던 생각들이 차분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에도 게임 오버는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이 책을 덮는다.

Text.이재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