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카자키 쿄코 <PINK>


나의 것은 없는 풍요로운 세계

오카자키 쿄코 <PINK>


오카자키 쿄코는 사회가 금기로 여기는 것들을 작품에 그려내 세상에 출간함으로써 ‘금기’에 도전하는 작가다. 오카자키 쿄코가 도전하는 금기의 중심에는 여성의 삶이 있다. <PINK>는 악어를 기르는 회사원 유미가 계모의 불륜상대인 하루오를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미 여기부터 꽤나 매운맛의 막장스토리를 떠올린 독자들이 있겠지만, 이 이야기는 ‘막장드라마’ 보단 우화에 가깝다.


직장을 다니면서 육식동물인 악어의 밥값을 충당하고, 거기에 작품이 나왔던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일본의 버블경제기에 걸맞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유미는 매춘을 한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모든 일은 매춘”이라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마춘은 노동자들의 일반적 매춘의 특정한 표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작품 속에서 유미를 통해 낮 동안에는 모두를 공평하게 ‘착취’하는 자본주의가 밤이 되면 어떻게 여성을 추가로 착취하는지를 그려낸다. 여기서 유미의 시선을 통해서 한번, 유미의 계모를 통해 또 한번 이것이 역전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자본만이 ‘나를 지키는’ 수단으로 작동하는 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유미와 계모의 불륜상대였던 하루오의 관계는 때문에 필연적이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러나 노동만으로는 ‘나’를 지켜내기 어려운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인플레이션, 그리고 ‘다들 이정도는 하는데’ 라고 여기는 FOMO(Fear Of Missing Out, 소외에 대한 두려움)가 우리를 괴롭힌다. 유미는 왜 쉬지 않고 일하는데 행복하지 않을까. 공허함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작품이 던지는, 30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도 유효한 질문이다. 32년 전에 ‘뉴웨이브 만화가’로 평가받은 오카자키 쿄코는, 2021년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PINK>가 발매된 1989년은 일본 고도성장기의 끄트머리였고, 돈이 넘쳐흘러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사람들이 넘쳐났다. 당시에는 집 안에 온천을 만들거나(농담이 아니라, 돈만 있으면 정말로 거실에 온천을 만들 수 있었다), 영상통화가 가능한 가정용 전화기를 판매하기도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시간을 들여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걸 돈으로 바꾼다. 그리고 그게 가치가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오카자키 쿄코는 <PINK>에서 유미와 악어를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악어는 유미에 의해 길러지면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지만, 유미에게 악어는 자신이 얻지 못할 자유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존재만으로도 존재할 수 있고,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며, 나아가 그 가치를 증명받지 않아도 되는 존재다. 결말부의 충격은, 그것이 유미의 착각이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정해져 있는 수순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프레더릭 제임슨의 말처럼 우리는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쉬운” 세상에 살고 있다. <PINK> 역시 자본주의의 모순과 한계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결과적으로 작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유미에게 이전과 같을 수 없지만 이전처럼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거나, 아니면 생을 마치는 선택지를 준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건, 과연 선택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일해야만 존재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사는 삶은, 선택일까? 부디, <PINK>가 주는 카타르시스를 만나보시길.

Text. 이재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