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팔로마르의 아이들


감산(減算)의 즐거움

<팔로마르의 아이들> 힐베르트 에르난데스, Goat


『팔로마르의 아이들』을 직접 읽으면서야 그러고 보니 이런 만화가 그리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웹을 통해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언제 어디서나 만화를 감상하고 댓글을 통해 작은 커뮤니티를 경험하거나 화려한 컬러감을 당연시하는 즐거움도 크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채워지지 않은 욕구의 공백이란 항상 존재하는 법이다. 가령 인쇄된 만화를 손에 쥐어 그 물성을 직접 느낀다든지, 다른 무엇에도 접속되지 않은 채 온전히 작품 자체에만 집중한다든지. 실감을 따지며 디테일을 늘려만 가는 만화들로부터 멀어져 가끔은 과잉에서 오는 피로감을 덜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것이다.


책의 형태를 지닌 오래된 미국 만화만이 주는, 가산(加算)이 아닌 감산(減算)의 만족감이 분명 있다. 개연성 있는 섬세한 감정선을 묘사하기보다 단박에 이해 가능한 표정의 전형을 제시하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짓궂은 농담을 던지는 식이다. ‘동작선’을 본 것도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마을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질주하는 인물의 속도감을 고작 몇 개의 직선으로 그려낼 때 따라오는 호쾌함이 간만이다. 특히 압권이라 할 만한 것은 폭발한 바위가 운석이 쏟아지듯 흩어지는 장면이나 검은 하늘 아래 적막한 광야 같은, 페이지 하나를 꽉 채우는 풍경들이다. 다소 큰 판형으로 인쇄된 것이 아깝지 않을 만큼 시원시원하고 몰입감 있었는데, 묘사가 치밀하지 않‘아서’ 가능했을 것이다. 과감히 검은색으로만 뒤덮인 하늘을 보면서 마음만 먹으면 가장 단순한 것을 통해 심연까지도 그려내는 것이 만화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이 떠올랐다. 

다만 시리즈의 일부이기 때문에 내용에 대한 이해가 조각날 수밖에 없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팔로마르의 아이들』은 남미 오지에 자리한 가상의 마을 팔로마르를 배경으로 하는 장편 만화 팔로마르 중 하나라고 한다. 인물들의 설정에 얽힌 다른 일화나 비하인드를 그렸기 때문에, 그 자체로 온전한 줄거리의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내용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를, 오지에 자리한 마을을 새로 만나는 낯선 감정으로 치환해보는 것도 감상 요령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주술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이 뒤섞인 세계관,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생활하는 일에 전혀 위화감이 없는 마을 분위기, 출산을 할 수 없는 여성이 갖는 이 마을에서만의 독특한 위치와 능력 같은 것들 모두 탐험하듯 생경한 눈으로 감상하기에 제격이기 때문이다. 차후 다른 시리즈가 번역돼 이해의 퍼즐을 맞춰 보는 것도 좋겠지만, 몇 컷의 밤하늘 뒤에 훌쩍 흐른 세월 사이의 일을 상상하듯, 생략되고 압축된 장면들에 무작정 뛰어들어 감상해보는 것도 부족함 없는 즐거움이 될 수 있다.

Text 최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