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수영일기


전진을 위한 일기

학교 체육 시간의 준비운동을 싫어하던 사람도 수영장의 준비운동은 좋아하게 될지 모른다. 강제성도 없고 기존의 중력도 작용하지 않는다. 팔벌려뛰기를 하다 마지막 구령을 외쳐 눈총을 살 일도 없고 호루라기 소리를 따라 먼지 날리는 운동장을 도는 것과도 다르다. 발을 구르면 두 배는 더 뛰어오르고 수면 위로 팔을 휘두르면 물장구를 전방 1미터까지도 쳐낼 수 있다. 이토록 가볍고도 강력한 몸이라니! 만년 체육 부진생조차 포세이돈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이 멋진 나를 기록해두고 싶다는 충동이 드는 것이다. 수영의 매력을 알게 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수영하느라 지쳐 기록할 여력까진 나지 않았던 사람, 글로 쓰기엔 현장감이 아쉽고 카메라를 들기엔 걸리는 게 많았던 사람, 만화 『수영일기』는 이런 사람들에게 제격일 듯하다.



사실 『수영일기』는 가독성이 장점인 만화는 아니다. ‘일기’라는 제목대로 자기 기록에 충실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두꺼운 매직으로 쓱쓱 쓰고 그려낸 글과 그림들이 하얀 지면 위로 흐물거린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수영, 일기’라는 정체성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 『수영일기』에는 맨 앞과 뒤 작가의 말을 제외하고는 독자를 겨냥한 안내나 부연이 없다. 수영을 시작한 첫날부터 54번째 날까지, 날 것 그대로의 기록만이 빼곡하다. 그야 ‘일기’니까, 목차나 주석이 달리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캐주얼한 형식 덕에 어법의 구애를 받지 않는 생생한 의성어들-“하악하앍”, “슙팝파파팟”-도 몰입을 돕는다. 거기다 흐물거리는 글과 그림들이 수면 아래 굴절된 모양 같다고 하면 과한 해석일까? 흐느적거리며 배영 하는 그림이나 물방울이 튀기는 글자에서 느껴지는 사실감이 생생하다. 글과 그림에 꼭 부력이 있는 것 같아서, 꺼내 물 위에 띄워놓으면 둥둥 떠내려갈 듯한 느낌이다. (못 믿겠다면 사은품으로 나온 수영하는 책갈피를 종이 위에 띄워봐도 좋다. 위화감이 없다.)


본격적인 수영 과정에 있어서는 독자의 경험에 따라 읽는 느낌이 천차만별일 것 같다. 『수영일기』의 저자는 자유형을 지나 배영, 평영, 접영까지 해낸다. 수영복 입는 것도 어설프고 발차기조차 어려워하던 초심자 시절을 지나 가장 상급자 코스인 접영까지 무난히 해내는 모습을 나날의 기록이 생생히 증언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독자가 마찬가지로 수영을 마스터한 상태라면 처음 수영을 시작한 때부터 현재까지 마치 앨범을 보듯 추억에 젖을 수 있을 것이다.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나의 경우 몇 달을 다녀도 자유형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운명의 장난으로 코로나가 터지면서 영영 입문자 상태에 머물러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런 나도 읽는 것이 즐거웠다. 앞 부분은 공감하며 읽었고, 뒷 부분은 예고편을 보듯 읽었다. 훌쩍 앞서나가는 모습이 조금 서운할 법도 했지만, 지각과 결석을 반복하는 인간적인 모습에, 그런데도 어떻게든 완주해내는 모습에 왠지 용기를 얻었다.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꼼꼼하고 솔직한 기록을 통해 ‘수영 환경’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운이 나쁜 것인지 좋은 것인지 센터의 사정으로 수영 선생님이 꽤 빈번히 바뀌는데, 그러면서 다양한 강습 방식을 경험하게 된다. 가르치는 순서나 속도도 다르고 ‘올바른’ 자세의 정의도 제각각인 듯하다. 화법도 달라서 강경하게 윽박지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조곤조곤 설명하는 이도 있다. 뭐가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지도를 통해 훌쩍 실력이 느는 저자를 보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은 분명 있는 것 같다. 엄한 선생님이 자극이 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주눅이 드는 이도 있는 것이다. 이는 한 명의 선생님을 통해서만 배웠던 나로선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부분이었다. 나의 경우 물 먹어도 좋으니, 못 해도 좋으니 일단 하라는 식으로 배우곤 했는데 좀처럼 따라잡지 못해서 내 운동 신경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만화를 읽으며 어쩌면 세상 어딘가엔 나와 꼭 맞는 선생님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외에도 함께 수업을 듣는 강습생들, 수영 물품, 그리고 계절에 따라 수영하는 풍경이 크고 작게 달라지는 것이 흥미로웠다. 조언 한 마디로 정체기를 뛰어넘을 수도 있고, 새로 산 물안경 하나로 권태기가 극복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인 경험을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수영을 하며 가장 좋았던 것은 ‘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꼭 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 정해진 기한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언젠가 수영이란 것을 할 수 있게 됨’을 목표로 삼을 뿐이었다. 초조해지지 않으니 사소한 변화해도 한껏 기쁠 수 있었고 스스로의 실수가 웃겨 양껏 웃을 수 있기도 했다. 그래도 뭐라 하는 이는 없었다. 아직 나아가지 못해도(不進) 괜찮았다. 『수영일기』를 읽고 있으면 그때의 기쁨과 웃음을 대신 기록해준 듯한 착각이 든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물에 뜨는 법부터 배우기 시작한다는 게 꽤 진입장벽이 높은 일이었지만, 막상 시작하고 보니 ‘별거 아니네’라고 할 수 있게 됐어요”, “할머니가 되어서도 느긋하고 여유롭게 물살을 가르며 수영을 할 거예요”라는 작가의 말에서 잘해야 한다는 압박과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는 편견에서 슬쩍 비켜난 자유로움이 보인다. 아마 높은 확률로 태릉선수촌에 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그게 우리가 수영하지 못할 이유는 아닐 것이다. 아주 조금의 용기와 드문드문한 끈기로나마 물살을 가로지르며 조금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더디더라도 전진할 수 있음을 믿고 싶은 ‘부진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Text. 최윤주

허안나 <수영일기> 구매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