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정리의밤

길을 따라 삶을 만나는 밤

<정리의밤>, 불키드, 삐약삐약북스


<정리의 밤>은 부산으로 인사이동을 당해 이사를 하게 된 주인공 강해은이 전국을 돌며 친구들에게 소중한 물건을 나눠주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서울에서 출발해 단양, 군산, 순천을 거쳐 부산으로 향하는 이 여정에 로드무비의 낭만은 없다. 작가는 후기에서 처음에 로드무비로 기획했다고 밝혔지만, 그렇게 그려낼 수 없는 이야기들이 여기에 담겨있다. 털어내지 못한 죄책감, 아직 마음속에 남은 미련, 용기가 없어 마주하지 못한 변화, 그리고 용기가 없어 전하지 못했던 위로를 전하거나, 얻거나, 버리러 가는 길이다.


우리는 책을 펼쳐 들고 작품 속 큰 해은의 이야기를 따라 길을 떠난다. 단양에서 만난 친구는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영원히 함께하자던 군산의 친구는 해은이 납득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순천의 친구는 아들을 혼자 두고 서울에 있었다. 이 여정에서 해은은 자신의 마음속에 자신도 모르게 남겨졌던 숙제를 해결한다.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서울로 돌아온 해은은, 자신을 좌천시킨 회사에 사표를 던진다. 새로운 페이지로 나갈 수 있게 된 해은은, 다시 똑같은 길을 따라 여행을 떠난다. 이번엔 좀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도, 일부러 들르지 않게 된 곳도 생겼다. 하지만 마지막은 그때 가지 못한 부산에 도착해 그때 마무리 짓지 못했던 위로를 주고받는다.


아직 미련이 남은 물건을 소중한-또는 소중했던-사람들에게 전하는 <정리의 밤>은 당사자가 아니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해은의 눈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불키드 작가의 유려한 필치로 풀어낸 작품은 읽는 재미는 물론, 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해 묻는다. 작가가 자신의 삶을 통해 변화를 체험했기 때문에 나온 질문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내 책상 위를 내 책상 위는 언제나 아직 해결되지 못한 죄책감으로 복잡하다. 읽어야 하는 책, 읽기를 부탁받은 책, 그걸 다 읽고 읽겠다고 결심한 읽고 싶은 책. 그 죄책감들은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쌓여간다. 언젠간 정리하겠지, 하고 생각하면 다음 이사 때까지 미루고 마는, 해결되지 못한 죄책감. 언젠가 나도 정리의 밤을 맞을 수 있을까? 당신이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Text.이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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