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심규태 <여가생활>


심규태 <여가생활>


분명 땀을 뻘뻘 흘리며 기진맥진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서도, 어쩐지 여름방학 같은 명랑한 표지에 착각했다. 땀이 날 정도로 신나게 놀러 다니는 이야기를 상상했는데 3분의 1쯤 읽고서야 무심코 넘긴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까 이 만화는 취미생활이 아니라 <여가생활>이다.


여가란 일이 없어 남는 시간, 유사어로는 사이, 짬, 틈, 겨를 같은 말들이 있다. ‘틈’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전후든 좌우든 그 틈을 있게 하는 주변부를 보는 것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여가생활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전개 내내 마감에 시달리고 작업실에 출퇴근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일을 해야, 일이 없어 남는 시간도 생기니 말이다. 



아니, 사실은 만화가에게 ‘일이 없어 남는 시간’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늦은 밤 또 한 번의 지각을 예감하며 이 리뷰를 작성하는 처지로서 장담하건대) 이쪽이 훨씬 신빙성 있는 추론인 것 같다. 프리랜서 형태로 창작을 업으로 삼는 이에게 칼로 자른 듯 명료한 노동시간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감을 끝내지 못했다면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은 남는 시간이 아니라 미루는 시간이 되고, 설령 마감이 없다 하더라도 일상을 영감 삼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된다. 책 표지가 그 증거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진이 빠진 앞면과 피자를 한판 해치운 뒤 태평스레 누워 자는 뒷면은 유심히 보면 책등을 사이에 두고 교묘하게 이어져 있다. 놀 때도 일 생각을 할 수밖에 없으니 일할 때는 놀 생각을 하게 되는 가련한 창작자의 일상을 암시하는 것 아닐까. 그야 물론 디자인의 완결성을 위해서겠지만.


울며 마감하는 모습들에 가련하다 농담했지만, 마감 주변에 놓인 그의 일상을 따라가면 사실은 대체로 썩 괜찮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담담히 자기 이야기를 풀어나갈 뿐인 곳곳에, 밥값을 만화 보는 데 쓰느라 살이 빠졌다거나 일본어를 배워서 만화 원서를 봐야겠다고 다짐하거나, 지하철 이야기를 하면서 무심코 ‘다 좋은데 그릴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해버리는 장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박혀 있다. 만화를 정말 좋아한다고, 업이 아니었어도 평생 만화를 놓을 일은 어차피 없었을 거라고 온 지면으로 전하고 있는데, 조금 투덜대기로서니 이 소소하고 소중한 행복이 감춰질 리가 없다.


좋은 것을 보면, 좋은 대화를 나누면, 좋지 않은 일들을 겪을 때조차 결국은 만화를 그릴 생각으로 돌아온다. 여가가 자연스럽게 일이 된다. 놀 듯이 일하고, 일하듯 놀아서, 삶은 숙제가 꽤 신경 쓰일 뿐 대체로 즐거운 방학처럼 흘러간다. 한 번씩 울면서 밀린 방학 숙제를 처리하긴 해야겠지만… 뭐 어떤가. 좋아하는 만화가 늘 곁에 있는데.

Text. 최윤주